암천처사 조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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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암천처사(巖川處士) 조대(釣臺)는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산 19-13에 위치한 유적입니다. 2012년 5월 10일 논산시의 향토문화유산 제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.
조대(釣臺)는 조선 중기 학자인 박증(朴增, 1461~1517)이 낚시를 즐기던 바위입니다. 박증의 자는 익지(益之), 호는 암천(巖川)이며,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입니다. 그는 외조부인 성삼문이 단종 복위 운동으로 화를 입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학당리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와 낚시를 즐겼습니다.
암천처사 조대의 의미:
- 은둔과 절의: 박증은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자신의 절개를 지켰습니다. 암천처사 조대는 이러한 그의 삶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.
- 학문과 풍류: 박증은 낚시를 즐기면서도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. 조대암은 그가 학문과 풍류를 함께 즐겼던 공간임을 보여줍니다.
- 후대에의 교훈: 훗날 경암(敬庵) 윤동수(尹東洙)는 박증의 자취가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조대암에 '암천처사조대'(巖川處士釣臺)라는 여섯 글자를 새겼습니다. 이는 박증의 삶과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.
박증과 관련된 추가 정보:
- 박증은 효심이 깊고 경서 연구에 매진하여 뛰어난 문장 실력을 갖추었습니다.
- 매월당 김시습, 남효온 등과 교류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했습니다.
- 53세에 동생 박호가 충청감사로 부임하여 찾아왔을 때,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임금을 섬기는 데 힘쓰라는 조언을 했습니다.
- 「강호연군가(江湖戀君歌)」 등 7수의 시를 남겼습니다.
암천처사 조대는 단순한 낚시터를 넘어, 조선시대 한 지식인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.
암천처사 조대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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암천처사 조대 | |
국가 | 대한민국 |
위치 | 논산시 |
유형 | 향토문화유산 |
지정 번호 | 42 |
지정일 | 2012년 5월 10일 |
주소 |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산 19-13 |
시대 | 조선 |
소유자 | 무안박씨종중 |
수량 | 일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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